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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


"너의 생각과 느낌 이면에는 전능한 지도자, 미지의 성현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자아다. 너의 몸 안에 그가 살고 있다. 그는 곧 너의 몸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2쪽 실레는 자기자신, 특히 자기 자신의 몸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이상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볼품없는 몸매를 극단적이거나 도전적인 자세로 드러냈다. 이러한 자아도취와 노출증은 그가 예술가를 신적 요소를 가진 존재로 여기고 자신안의 넘치는 충동과 열정을 예술안에서 실현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로서 인정받게 되고 가정을 이루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화상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실레는 아버지의 부재로 여자들만 남은 가정에 자신이 가장이라고 생각했으면서 가장으로서의 의무보다는 가족들이 위대한 예술가인 자신에게 헌신해야한다고 믿었다. 그의 아버지가 방종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끝에 뇌매독으로 젊은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위해 보잘 것 없는 연금만 남기고 죽었는데도 홀몸으로 자녀를 돌보느라 애쓴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어머니와 여자에 대한 원망과 혐오는 죽은 어머니 라는 시리즈 작품에서 드러난다. 어머니가 자식인 자신을 사랑하고 죽기까지 희생하길 바라는 이기심, 그렇지 않은 어머니는 죽는게 낫다는 증오심의 일편을 이제 볼 수 있어 씁쓸하다. 실레의 초창기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화보다 후기에 풍경을 그린 그림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히려 리듬감있고, 동양의 오방색같은 색감이 관람자를 무척 즐겁게 해준다. 아마 실레가 더 오래 살았다면 그의 작품도 더욱 우아하고 풍요롭게 변해서 후대에 다른 이미지의 예술가로 기억되지 않았을까?TASCHEN 시리즈는 전에 읽은 시공 디스커버리 책자에 비해 판형이 커서 도판을 감상하는데 유리하다.
에곤 실레는 오스카 코코슈카와 더불어, 클림트의 위대한 시대가 끝난 뒤 가장 오랫동안 빈의 예술에 영향을 미친 화가이다. 짧은 기간 클림트 스타일에 관심을 보인 후, 실레는 곧 거칠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그림들을 통해 빈 사회의 아르누보의 아름다운 표면에 대한 미학적 관심에 의문을 제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실레의 표현주의적인 누드와 자화상이 포즈가 야릇하고 색채도 음울하고 추하여 도덕적으로 불쾌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적대적인 비평가라 할지라도 그의 뛰어난 드로잉 실력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예술가와 그의 자아
??나는 클림트의 궤적을 따라갔다??
표현 매체로서의 육체
실레의 작품에 나타난 예언자적 상징주의
영혼을 담은 풍경
에곤 실레(1890~1918)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