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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인간


남몰래 팝콘을 뺏어 먹을 수 있다면? 내 모습이 만약 보이지 않는다면?다들 한 번쯤은 상상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투명 인간’이 된다는 상상이요.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고,내가 무얼 해도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투명 인간!나이가 들어서는 투명 인간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어린 시절에는 분명 꿈꿔왔던 상상입니다.그때는 투명 인간이 되는 상상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느껴졌어요.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상상들이 그렇게 건전한 것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투명 인간이 되어 누군가를 돕거나 하는 상상보다는 몰래 장난을 친다는 등의 짓궂은 상상들을 했었지요. 개중에는 다소 야한 상상들도 있었겠지만,뭐 어디까지나 어린 시절의 상상 일뿐이니까요.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투명 인간 혹은 투명해지게 만드는 기술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세상입니다.하지만 아무래도 현실화되기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그러니 여전히 우리는 상상만 해봅니다.최근에 개봉한 영화‘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광학미채를 사용하는 주인공역을 맡기도 했지요.사실 개발된다고 하여도 일상용보다는 군사용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H.G.웰스의『투명 인간(The Invisible Man)』입니다.작가H.G.웰스는 지난번에 다른 작품『타임머신』으로 먼저 소개한 바가 있죠.역시나 지난 서평에서 말한 것처럼『투명 인간』도『타임머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웰스가 살던 시대의 과학기술의 발달을 고려하면 아무래도 이 작품에서도‘투명 인간’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습니다.어떤 실험의 결과로 투명 인간이 되었고,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죠. 이야기는 한 낯선 남자가‘아이핑’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여‘마차와 말’이라는 여인숙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작합니다.여주인 홀 부인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합니다.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에 아이핑에서 숙박하는 손님은 매우 드물고,더구나 비싼 숙박료를 흥정 없이 바로 지불했기 때문이죠.게다가 들어와서도 눈에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트를 벗지도 않고 있었지요. 그는 장갑 낀 손을 등 뒤에서 맞잡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홀 부인은 아직도 그의 어깨 위에 흩뿌려진 눈이 녹아서 카펫에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자와 외투를 부엌에서 뽀송뽀송하게 말려 드릴까요」홀 부인이 물었다. 「아니,괜찮소.」손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홀 부인은 손님의 대답을 들었는지 확실치 않아서,질문을 되풀이하려고 했다. 그때 손님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입고 있는 게 더 좋소.」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홀 부인은 그가 곁창이 달린 커다란 푸른색 안경을 쓰고 외투 깃을 덮는 텁수룩한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어서 두 볼만이 아니라 얼굴 전체가 완전히 가려진 것을 알아차렸다. 기묘하죠.실내에선 당연히 모자와 외투를 벗는 것이 예의이면서 상식이지만,이 낯선 남자는 그러지 않으니까요.또한 객실에 들어선 이 남자는 햇빛을 극도로 싫어하고,가능한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뉘앙스를 내비칩니다.게다가 곧 그 남자 앞으로 도착한 수많은 유리병은 이 남자에 대한 소문을 증폭시킵니다.넓은 도시에서야 누가 오고 누가 가건 신경도 쓰지 않지만,아이핑은 매우 작은 마을이었고,앞서 말한 것처럼 이 남자의 여러 면모가 매우 낯설기 때문이었죠. 그렇지만 홀 부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이 낯선 남자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이유는 간단합니다.그가 돈을 제때에 잘 지불했기 때문입니다.비용만 잘 지불한다면 홀 부인은 그가 누구든 방 안에서 뭘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지요.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좀 다릅니다.마을 주민들이 보기에 이 남자는 매우 비사교적이고,특히 꽁꽁 싸매고 다니는 모습은 뭔가 불쾌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그러면 자연스레 소문이 돌기 시작하지요.먼저 가장 흔한 추리.범죄자일 것이라는 의견.혹은 피부가 흑백이 어우러진 사람이라는 의견.아니면 그냥 이 낯선 사내는 무해한 미치광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소문이 나돕니다.물론 대부분의 소문이라는 게 그렇듯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지요.이 낯선 남자와 면담을 가진 커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사제관에 달려와 번팅 씨에게 이상한 점을 이야기해도 번팅 씨는 믿지 않습니다.그게 너무나 터무니없는 소리였으니까요. 「내가 소맷부리를 때렸을 때…….분명히 말하지만,그건 팔을 때렸을 때의 느낌과 똑같았어요.그런데 거기에는 팔이 없었단 말입니다!팔은커녕 팔의 그림자도 없었다고요!」 번팅 씨는 그 말을 곰곰 생각했다.그러고는 미심쩍은 눈으로 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놀라운 이야기군요.」그는 매우 신중하고 진지해 보였다.번팅 씨는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처럼 힘주어 말했다.「정말로 놀라운 이야기예요.」 당연히 믿기 힘들지만 이 낯선 남자는 정말 투명 인간이었습니다.그리고 그가 투명 인간이라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지요.이 낯선 남자가 돈이 떨어져 방세를 내지 못하기 전까지요.그리고 얼마 안 가 사제관에 도둑이 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그리고 돈이 없다던 남자는 갑자기 돈을 지불하지요.의심이 갈만한 상황입니다.순경이 들이닥치자 낯선 남자는 결국 자신이 투명 인간임을 고백합니다.하지만 순순히 끌려가지는 않습니다.옷을 죄다 벗어 버리고 투명 인간이 되어 달아나버리죠.남자는 무사히 도망을 쳤지만,문제는 그대로 달아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투명 인간의 비밀이 담긴 자신의 비망록이 그대로 숙소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죠.다른 것은 몰라도 비망록만큼은 확보해야 했습니다.일단 상황이 진정되도록 도망친 투명 인간은2.5킬로미터쯤 떨어진 도랑에 있는 마블이라는 사람을 발견하고,이 사람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멈추었어.나는 말했지. <여기에 나처럼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가 있구나.이자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다.>그래서 나는 돌아서서 너에게 다가갔어.그리고…….」 「맙소사!하지만 나는 지금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어.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는데,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지?투명 인간!」 「옷과 거처를 구해야 하는데,그걸 도와주었으면 좋겠어.그리고 다른 물건들도.내 물건들은 아주 먼 곳에 놔두고 왔거든.네가 도와주지 않겠다면……좋아!하지만 도와줄 거야.도와주어야 돼!」 거의 협박입니다.투명 인간은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마블 씨에게 해코지할 것이 분명했으니까요.이러니 일이 매끄럽게 흘러갈 리가 없죠.처음에 마블 씨는 두려움에 투명 인간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지만,언제나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그리고 결국 투명 인간을 따돌리고 순경들에게 도움을 구하죠.이에 투명 인간은 격분합니다.마블 씨가 자신의 소중한 비망록까지 들고 갔으니까요.그리고 투명 인간은 마블 씨를 좇는 동안 순경들과 부딪히고 부상을 당합니다.아무리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맨몸인 투명 인간이 여러 명을 상대하여 무사할 수는 없었죠. 투명 인간은 몰래 어떤 집에 들어갑니다.상처를 치료하고,먹고 잘 곳을 구하기 위해서였죠.우연히도 이 집은 켐프 박사의 집으로,켐프와 투명 인간은 대학 동문이었습니다.그리하여 투명 인간은 자신의 정체를 켐프에게 밝힙니다.다소 거친 방법이지만요. 「소리 지르면 얼굴을 때리겠어.」투명 인간이 박사의 입에서 시트를 빼내면서 말했다.「나는 투명 인간이야.어리석은 장난도 아니고 마술도 아니야.나는 정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이란 말이야.그리고 자네 도움이 필요해.자네를 해치고 싶지는 않지만,자네가 미친 촌뜨기처럼 나오면 해칠 수밖에 없어.나를 기억하지 못하겠나,켐프?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그리핀을」 투명 인간의 이름은 그리핀입니다.그는 빛에 매료되었었고,투명 인간에 대한 연구를 했었죠.그리핀은 켐프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어떻게 연구를 했었고,어쩌다가 자신이 투명 인간이 되고 말았는지,그리고 어떻게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켐프는 처음에 그리핀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의 침실을 내어줍니다.그리고 그리핀의 이야기를 들어주죠.하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관입니다.그리핀이 저지른 일들은 방화,강도,도둑질 등이었으니까요. 「그놈은 눈에 보이지 않아!」그는 중얼거렸다.「기사를 보면 분노가 광기로 악화되는 것 같아!놈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무슨 짓을 저지를지!그런데 그놈이 지금 위층에 있어.공기처럼 자유롭게.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건 배신행위가 될까?예를 들어 내가…….아,아니야.」 그리핀의 행동과 그 안에 담긴 광기를 보며 켐프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이후 켐프의 선택으로 그리핀은 극심한 분노에 휩싸이고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켐프의 선택이 너무 섣부른 판단은 아니었을 것입니다.그리핀이 이후에 하는 말들을 보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인이야,켐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인이라고」켐프가 되풀이했다.「이봐,그리핀.나는 자네의 계획을 듣고 있을 뿐,동의하는 건 아니야.그 점을 명심하게.그런데 왜 살인을 해야 하지」 「악의적이고 무자비한 살인이 아니라,현명하고 신중한 살해일세.문제는 투명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거야.그리고 그 투명 인간은 지금<공포 정치>를 확립해야 해.그래,물론 깜짝 놀랄만한 일이지.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공포 정치.투명 인간은 버독 같은 도시를 점령해서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지배해야 돼.그리고 명령을 내려야 해.명령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은 수천 가지나 되지.종이쪽지를 문 밑으로 밀어 넣기만 해도 충분할 거야.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야 해.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을 보호하려 하는 자도 모조리 죽여야 해.」 자.이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갈까요?결말은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혹여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말이지요. 항상 무의식적으로 투명 인간이 된다는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고 생각했었어요.하지만 웰스의『투명 인간』을 읽고 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투명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외로운지 그리핀의 이야기는 몸서리를 치게 만듭니다.가만 생각해보면 투명 인간이 돼어 해보고 싶은일들 대부분은 범죄 가능성이 높네요.그런데 어째서 그렇게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분명 제가 악한 인간이기에 그런 것은 아닌데 말이죠.이래저래 유쾌하고 행복한 투명 인간은 없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습니다.누군가 혹 생각이 나신다면 제게도 조금 귀띔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역시나『투명 인간』에서도 웰스의 상상력은 놀랍기만 합니다.막연한 상상을 그럴듯하게 현실에 적용해보고 생각해보게 만들지요.물론 투명 인간에 대해 다르게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그리핀은 확실히 너무 성질이 변덕스럽고 극단적인 면모가 있지요.다른 과정,다른 결말이 있을 수도 있겠죠.그래도 이렇게 한번 가정해본다는 것,그 자체가 흥미롭습니다.여러분이 투명 인간이 된다면 어떨까요?재미있을까요?
가면 밑에 숨은 인간 어둠의 심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에 걸친 격동기에 문학, 과학, 정치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 투명 인간 .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 작품부터 한국의 고전 문학까지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고전을 새롭게 선보이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186번째 책이다. 스스로의 모습을 사라지게 만든 한 과학자의 실험과 그가 겪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가난한 과학자 그리핀은 불가시성이 가져다줄 힘과 자유를 상상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든다. 하지만 투명 인간을 향한 사람들의 공포와 혐오는 커져만 가고, 그는 하나의 거대한 악이 되는데…. 이 작품은 투명 인간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 고독과 공포의 근원을 파고든다.


투명 인간

역자 해설: 보이지 않는 인간이 보여 주는 것들
허버트 조지 웰스 연보